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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현대미술의 개념 : 미래주의

by 지유 2025. 11. 23.

미래주의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현대미술 사조 가운데 특이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탈리아산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문명관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표현을 처음에 담화 안에서 찾았다. 그것은 전해 내려온 예술 작풍에 대한 불만과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려는 야심에서 분출되었다기보다는 일반적인 사상을 가지고 출발했으며, 그 예술적 표현을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뒤에야 찾았다. 어떤 면에서 모든 전통과 유서 깊은 가치 및 제도를 시끄럽게 거부한, 가장 급진적인 운동이었다. 미래주의는 그 사상을 런던에서 모스크바에서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전파했지만 마치 별똥별처럼 단명함으로써 그 영속적 가치가 흔히 과소평가됐다. 미래주의는 야수파나 입체주의처럼 반대파의 비평가들에 의해 명칭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칭을 스스로 선택했으며, 자체의 이론적 해석을 문학적 형태로 규정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예술가들의 선언문 발표라는 현대적 전통은 주로 이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이 운동을 창시한 사람은 시인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였다. 1908년 가을에 그는 선언문을 하나 썼는데, 그것은 자기 시집에 대한 머리글 형식으로 1909년 1월 밀라노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 선언문이 훗날 그가 추구하던 만큼 반향을 얻게 되고, 또 미래주의 탄생의 공식적인 날짜로 기록된 것은 같은 해 2월 20일에 '르 피가로'지 1면에 프랑스어로 이 선언문이 실리면서부터였다.



마리네티는 이 운동의 이름으로 역동주의, 전기, 미래주의 사이에서 망설였다. 이 명칭에서 그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술 공학적인 힘의 세계가 태동하는 것을 대부분의 문필가나 예술가보다 더 민감하게 의식했던 그는, 예술이 과거를 파괴하고 속도와 기계 동력이 주는 유쾌함을 찬양하기를 바랐다. "우리는 선언한다"라고 그는 자신의 선언문에 이렇게 썼다. 



이 세계의 장려한 아름다움은 새로운 미, 즉 속도의 미에 의해 그 눈이 부신 빛을 더했다. 경기용 자동차, 터질 듯이 숨을 쉬는 뱀을 닮은 거대한 파이프로 장식된 차체, 달리는 것처럼 울부짖는 자동차, 그것은 사모트라케의 니케보다 더 아름답다. 이제 아름다움은 오직 투쟁 속에서만 존재한다. 공격적인 성격을 가지지 않은 작품은 걸작이 될 수 없다. 



그 밖에도 기맥상통하는 것이 더 있다. 마리네티의 격렬함은 미완성 상태의 이탈리아 국가 발전과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압제적으로 이탈리아 문화를 짓누르는 웅장한 과거 전통의 방대한 부담, 즉 이탈리아는 19세기 발전에 이바지한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과 현대문학, 예술 사조의 상충적인 다양한 경향을 갑자기 직면한 데서 오는 마리네티 자신과 친구들의 마음속 혼란 등에 대한 조바심에 비례한다. 20세기 접어들어 처음 10년 동안 이탈리아는 새로운 잡지와 전시회를 통해 인상주의, 마티스와 피카소의 초기 작품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 신예술의 다양한 조류 등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이러한 조류에 직면하면서 생긴 혼란을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는 이들 모든 조류에 대체할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함으로써 혼란의 소지를 철저히 근절하는 것이었다.



아주 똑같은 감정이 아주 똑같은 단어로 '이탈리아의 청년 작가들에게' 보내는 선언문에 표현되었다. 이 선언문은 마리네티가 직접 지휘 감독하고 화가 세 사람, 즉 움베르토 보치오니, 루이지 루솔로, 카를로 카라의 손으로 초안한 것이다. 1910년 2월 11일 자로 된 이 선언문이 실제 작성되었을 때는 2월 하순이며, 3월 8일 트리노의 키아렐라 극장 무대에서 보치오니의 낭독으로 처음 공표되었다. '미래주의 화가 선언'은 새로운 세계를 위한 새로운 예술을 단호히 요구했으며, 과거의 예술에 대한 어떤 집착도 거부했다. 이 새로운 예술의 성격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는 그다음 선언문, 즉 그해 4월 초에 낱장으로 인쇄되어 나온 보치오니의 '초현실주의 회화의 기술선언'에서 명백해졌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모든 것이 달리고,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돈다. 하나의 형상은 우리 앞에서 절대로 정지해 있지 않으며, 항상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망막에 비친 영상의 지속성을 통해 운동 중의 사물은 그것이 통과하는 공간 속에서 진동처럼 서로 연속함으로써 복수화되고 왜곡된다. 이렇게 해서 달리는 말은 네 다리를 안 가진 것이 된다. 다리는 20개가 되고, 운동 형태는 삼각형이 된다. 가끔 길에서 만나 이야기하는 사람의 뺨에서 멀리 지나가는 말을 보기도 한다. 우리 몸이 안락의자로 들어가고 안락의자가 우리 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집들 사이를 달리는 전차가 집들 속으로 들어오면서 이번에는 집들이 전차 속으로 공격해 들어가 그것과 하나가 된다. 우리는 생을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오늘날의 과학이 과거를 부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의 물질적 요구를 만족하는 것이다. 같은 식으로 예술은 그 과거를 부정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지적인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치오니는 이러한 감각의 복수성이 회화 작품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에 대해 그다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신인상주의자들에 의해 4반세기 전에 개발된 색채 분할 체계를 중요한 기본으로 강조했다.



미래주의 화가들은 자기들 사상을 표현할 회화적 수단을 발견하는 데는 일찍이 자코모 발라와 지노 세베리니 등과 같은 화가들이 논의해 왔지만, 다소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해 7월, 보치오니가 베네치아에서 작품 42점을 전시했을 때, 이 작품들은 비평가들에게 아주 잘 받아들여졌으며, 누구에게도 특별히 혁명적인 작품들로서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한 해설가는 보치오니 선언문의 대담한 언사와 그의 온화한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틈새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알프스 이북 지역의 전위미술에 관한 미래주의자들의 지식이란 사실 보잘것없었다. 더 모험적인 선구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세간티니와 프레비아티를 존경했으며, 니체와 바쿠닌의 저작물을 읽으면서 자신들의 상상력에 자극을 준 것이다. 이 시기에 그들 작품에 드러난 도시적인 주제와 격렬한 주제는 그들이 지닌 관심을 보여준다. 또한 전기 불빛을 그려보려는 흥미 있는 실험을 하기도 했지만, 그 표현법은 완전히 1890년대식이었다. 

 

 

노버트 린턴

Norbert Lyn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