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 입체파는 간단히 추상적, 또는 1911년 말에서 1914년 초 파리에서 일어났던 '순수한' 회화를 추구하는 경향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운동으로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창작물이었는데, 그는 1912년 10월 전시회에서 이 운동의 세례식을 행했다. 그는 입체파의 다양한 경향을 구분하려고 시도하는 중이었고, 인식할 수 있는 주제에서 멀어져가는 화가들 무리를 정의하고자 '오르페우스 적 입체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오르피즘은 진지한 호응을 받은 적이 없는데, 주된 원인은 아폴리네르의 정의가 아주 모호했고 그가 지목한 화가들, 즉 로베르 들로네, 페르낭 레제, 마르셀 뒤샹, 프랜시스 피카비아, 프랑크 쿠프카 등이 너무나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단지 피카비아와 들로네만이 이 지칭을 인정했는데, 들로네는 자기와 비슷한 종류의 그림에만 그것을 국한하려 했다. 화가들이 부정적으로 반응하자 아폴리네르는 결국 그 구분법이 '예술가 자신들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주장이 아니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아폴리네르가 사실로 '존재하던' 무엇인가의 시초를 간파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무엇인가는 인식할 수 있는 주제를 불필요하게 만들고 의미와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형태와 색에 의존하게 된 하나의 예술을 지칭한다.
아마도 오르페우스 입체파를 무시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추상미술의 역사에 적용되어 온 지나치게 엄격한 결정론일 것이다. 이것은 거의 서양 예술의 절정으로 간주하는 추상을 향해 부단하고 피할 수 없는 진전이 이루어졌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오르페우스 입체파 예술가 가운데 추상미술의 영웅이었던 몬드리안같이 추상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지 않거나, 외관상으로 주장하던 것보다 '덜 추상적인' 작가들은 이 기준에 의해 암암리에 힐난을 받았다. 하지만 초기 추상주의자들 가운데 아무도 '추상적으로 되어간다'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추상으로 이끄는 의식 상태를 표현하려고 했다. 그러나 인식되는 형상을 이용하는 것이 더 적합한 다른 것들을 표현하는 데에 대한 관심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사실 '순수한 그림'이라는 용어가 반드시 전적으로 비재현적 그림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자연주의적인 구성 양식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의 내부 구조를 가진 그림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것은 상당히 포괄적이므로 오르피즘 내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표현 방식을 모두 수용하여, 레제 작품 '푸른 옷의 여인'의 강력한 실재성부터 피카비아 작품 '샘물가의 춤 2'에 나오는 모호한 비물질성까지 여기에 포함한다. 다음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표현 범위는 폭넓은 의미 범위와 일치했다.
표현 양식상의 차이가 있음에도 1912년 가을, 들로네, 피카비아, 레제의 작품은 동등한 수준의 순수성에 도달했다. 그것들은 인식할 수 있는 영상을 재현했지만, 그 영상은 역동적이고 비 자연주의적인 구조로 분쇄해 버렸다. 쿠프카가 이 단계에 먼저 도달했다. 1911년 말에 그는 처음으로 '뉴턴의 원판들'이라는 제목의 연작에서 완전히 비 자연주의적 구성법을 이룩했다. 그리고 1912년 늦여름 몇 달간의 연구 끝에 대형작 '아모르파, 두 색채의 푸가'를 완성하여, 가을 전시회에서 발표했고, 아마도 이 새로운 경향에 대한 아폴리네르의 인식에 영향을 준 것 같다. 들로네, 피카비아, 레제는 1913년 봄과 여름에 무한대 공간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같은 무게를 가진 형태로 구성된 그림을 통해서 이 단계에 도달했다. 이 그림들에는 인물이나 물체가 담겨 있는 공간적인 면의 존재나 중력을 제시하고 그림의 토대를 잡기 위해서 '더 육중한' 색조를 쓰지 않았다. 따라서 이것은 이 그림에 대해 '자체의 특정한 법칙을 가진 하나의 새로운 세계'라고 한 아폴리네르의 묘사가 정당한 것임을 입증한다. 그런데 레제와 들로네 역시 구상적인 작품을 그렸고, 1913년 말에서 1914년 초에, 피카비아는 진행 과정과 기계적인 것의 뚜렷한 동일시에 귀착함으로써 초현실주의의 조짐을 예시했다. 이리하여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이미 추상의 '프랑스적인' 경향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실제로 전쟁 기간에 사라졌다. 이러한 변동과 추이를 특정한 순간에, 특정 사회 안에서, 특정한 압박감에 대한 반응이라는 관점에서 따라가 보면, 이것이 그들에게 비 재현주의적 형태를 발달시키도록 했던 추상에 대한 여느 이론적인 헌신이라기보다 의식을 어떤 형태로 표현하고자 한 예술가들의 투쟁이었음을 더 높이 평가하게 된다.
오르피즘 미술가들은 각자 '현대적 의식'이 이전에 선행했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에 호응했다. 들로네가 "역사적으로 볼 때 이해 방식의, 따라서 기술하고 보는 방식의 변화가 실제로 있었다"라고 지적한 것처럼 각자가 구상적 예술에 대한 대체안을 추구했는데, 이는 구상예술이 자기가 초월하려는 개념적 영역에 마음을 묶어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현대 생활이 변하면서 오르피즘 예술가들은 세상을 정적이고 제한된 공간 속에 있는 안정된 물체라기 보다는 역동적인 힘으로 구성된 것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이 변화에 의식 내부의 변화가 수반될 것이라고 믿었으며, 의식적 변화가 확장적이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만큼이나 아니면 집약적이고 자기 집중적인 만큼 역동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식 변화가 그들의 발전에 중심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외부적인 세계를 묘사한다면, 그들이 매우 역동적으로 그렇게 했더라도 그들은 자기의식의 계속성을 상실한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 속에서 자신들의 마음을 외부적인 것에서 멀어지게 하고, 형태를 창조하는 진행 과정, 즉 자신의 내적 존재와 외부 세계의 관계를 느끼게 해주는 진행 과정에 몰입할 수 있는 회화 양식을 발달시키면서, 창작 행위를 통해 이러한 의식과 더욱 심오한 접촉을 시도했다.
의식의 작용에 대한 오르페우스 입체파의 관심은 그들을 인간 생활의 외적인 징후를 그리는 것에서 도피시켰다. 그들은 인간 형상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거나 선과 색채의 격동 속으로 분해했다. 그들은 특정한 인간의 감동을 희박하고 덧없는 것으로 대치했다. 인본주의에 대한 이와 같은 거부는 동시대의 다른 예술들 속에서도 일어났고 그 시대의 철학, 예를 들면 베르그송의 비 개념적인 의식의 핵심으로 파고들려는 집약적이고 거의 시적인 시도 속에서 필적 될 수 있다.
버지니아 스페이트
Virginia Sp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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