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주의 운동은 입체파보다 늦게 1918년에 <입체파 이후>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시작되었다. 저자인 아메데 오장팡과 샤를-에두아르 잔느레는 "입체파는 입체파 자체의 중요성 혹은 전후의 획기적인 사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끝나고 말았다"라고 주장했다. 입체파는 '혼돈된 시대의 혼돈된 예술'이었다는 것이다. 순수주의는 그렇게 끝나버린 입체파를, 그것의 정당한 결론이었을 협동적이고 건설적인 질서의 시대로 이끌어갈 것을 공언했다. 순수주의는 매우 야심만만한 운동이었으나, 7년이라는 기간에 단명했고, 단지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 덕분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순수주의 회화는 그 기간에 파리에서 프라하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전시되었으나 전쟁 이후에 회화와 조각에 끼친 지대한 영향은 슈틸과 구성주의와 초현실주의 등에서 온 것이다. 순수주의 운동의 전성기는 데 슈틸에 대해 파리에서 연설한 테오 판 두스부르흐와 앙드레 브르통과 트리스탄 차라가 활동했던 1920~1925년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와 같은 경쟁에 반해서, 순수주의가 전후 파리학파의 입체주의 작가들과 데 슈틸에 대해 진지하고 독자적인 대안을 제시하던 때이기도 하다.
순수주의의 주된 주제는 명징성과 객관성이었으며 예술은 '수정을 향하여' 움직였다. 그러나 오장팡과 잔느레는 그들의 이러한 주장을 계시받은 예언자 같은 열정으로 되풀이했다. <입체파 이후>라는 책은 그러한 신념의 정열적인 성명서다. 그들이 발행한 잡지, <에스프리 누보>의 사설은 선언문적인 열기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마지막 시도였던 <현대 회화>지에서는 그러한 주장을 더 격렬하게 전개했다. 콕토가 가볍게 '질서로의 복귀 신호'라고 명명했던 것을, 그들은 혁명적 사명감으로, 문화적 게릴라 전술을 전적으로 인정하면서 맹렬히 수행했다.
그러나 순수주의 발행 책자들의 힘찬 기운은 그들이 표방하는 개념과 실제 작품의 조용한 치밀성을 접했을 때 삽시간에 얼어붙고 만다. 이 운동은 마치 반대파를 창조하기 위해서 계산된 것처럼 보인다. 대중이 가장 꺼린 현대의 미적인 이상, 즉 기능적 균형의 아름다움 또는 지적 편중, 개성 무시, 정확성 강조 등 이러한 것들이 모두 그 속에 들어 있다. <에스프리 누보>에 따르면, 이것들은 데 슈틸 이면에 내재해 있고 순수주의뿐 아니라 구성주의까지도, 이것들과 합쳐져서 이 운동에 생소하고 지식층의 기호에도 반하는 극단적인 것에 대한 하나의 적개심이다. 데 슈틸 계열의 초보적인 추상화에 대비해 보아도 순수주의 정물화 속의 병이나 주전자들은 아주 소심하게 보인다. 몬드리안은 극적으로 조용하고, 다른 순수주의자들은 그저 조용하다. 그 방면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온화해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 운동이 극단적으로 보인다. 결국 순수주의는 청교도적이며 데 슈틸과 엄밀하게 같은 방식으로 절제적이다. 질서를 내세우는 순수주의 캠페인의 뒤를 떠받치고 있는 교조적 확신은 데 슈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때문에 일어나는 똑같은 교조적인 반응으로 인간성 안에 있는 하나 이상의 지향적인 힘의 존재를 강조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인간 본능을 믿는 사람들은 이성의 힘을 열렬히 옹호한 선언에서 단지 본능 거부 현상만을 볼 것이고, 이성을 믿는 사람들은 본능을 열렬히 옹호한 주장들 속에서 단지 이성 거부 현상만을 볼 것이 자명하다. 순수주의는 흔히 그것이 표방하지 않았던 것들로 인해 우리에게 너무나 쉽사리 보이므로, 깊고 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가 어렵다. 르 코르뷔지에의 별장을 보면 바로 보로미니를 생각하게 되고, 오장팡의 정물화를 보면 바로 루벤스를 생각하게 된다. 순수주의가 표방하지 않았던 것들을 받아들일 때 그것에 대해 실망하기보다는 이해하는 심정으로 그것을 대할 때에야 비로소 순수주의를 보고 즐길 수 있다.
순수주의는 청교도적이었다. 그러나 오자앙과 잔느레가 흥을 깨트리는, 예술에서 기쁨을 말살한 예술가였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기쁨과 쾌락은 구별했고, 예술에서 쾌락의 종말과 기쁨의 우위를 설교했다. 그들은 기쁨이 균형적이지만 쾌락은 불균형적이고, 기쁨이 교양적이지만 쾌락은 즐겁게 해줄 따름이라고 믿었다. 쾌락은 식욕을 충족시키고, 기쁨은 삶 내부의 질서를 위한 요구를 채워주고 쾌락은 순간적인 흥취를 채워주지만 기쁨은 우리 안에 내재한 어떤 지속적인 것을 만족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들의 의도는 예술에 하나의 불변하는 기초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고전주의자였다. 순수주의는, 예술에는 우리가 모두 도달하려고 애쓰는 필수적인 요인이 있다고 말한다. 그 요인은 바로 숫자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우리 사상과 작품과 자연 속에 있는 구조의 수적인 분배 질서를 알아차리는 방법, 즉 분배율이다. 과거와 현재는 하나의 피라미드로 연상되는데,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푸생, 앵그르, 코로, 페리클레스, 에펠, 플라톤, 파스칼, 아인슈타인 등등의 인물이 한데 어울려 있다. 푸생이 살아서 '에스프리 누보' 그림을 보았다면 순수주의자들이 푸생에게 그랬던 것처럼 푸생도 그들의 그림에 찬사를 퍼부었을 것이다. 위대한 예술, 위대한 삶, 위대한 사상의 본질은 바뀌지 않고, 그 피라미드의 정점은 어느 때, 어느 곳이든 바뀌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이런 계급적인 사고에 대한 확신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와 유사하다. 팔라디오와 동시대인이며 아리스토텔레스학파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다니엘레 바르바로에게도 균형 속의 조화는 삶의 진정한 법칙이며, 이러한 법칙을 탐구하는 과학과 그것을 이용하는 예술은 모두 이러한 확신을 다루는 것이어야 했다. 오장팡과 잔느레는 예술을 일정한 목표에 도달시키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속에 어떤 객관적인 정당한 '진리'가 발현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장팡은 완고했다. 그는 "이성 혹은 과학에 따라 발현된 질서가 우리와 동떨어져 있거나, 우리 자신의 심성과 지각 구조의 반사 이상의 것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환경과 행동 속에서 끊임없이 발견되는 이러한 질서가, 평정을 이루려는 우리의 심성과 그것을 인지하려는 감각의 요구와 같은 진정한 인간적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고 확언할 수 있다. 과학과 예술은 이러한 욕구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의 증거다. 파르테논 신전과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둘 다 똑같은 인간의 기능을 충족시켜 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능주의는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철수한 데 밑바탕을 두고 균형감에 역점을 둔, 르네상스 인본주의에서 새로이 확산한 영역이다. 인간의 사고에, 그들의 청각과 시각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균형감은 그들의 오관을 담은 구조물인 인체와 그들의 심성에 직접 연관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더는 신과 연관되지는 않는다.
크리스토퍼 그린
Christopher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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