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의 회화 및 조각이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는 자축 분위기 때문에 흔히 영국 작가들이 이보다 앞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현대미술에 중요한 이바지를 했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하고 있다. 이 작가들은 대부분이 소용돌이파 작가들과 함께 전시했거나 그들과 접촉이 있던 작가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가들 모두가 소용돌이파 운동에 공식적으로 관계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소용돌이파는 무엇보다도 윈덤 루이스라는 한 작가의 개성에 크게 영향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가 가장 훌륭한 화가였기 때문이 아니라 빼어난 논쟁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훌륭한 화가였기 때문이 아니라 빼어난 논쟁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훌륭한 선전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1956년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에서 '윈덤 루이스와 소용돌이파'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렸는데, 이 전시회에서 루이스 이외의 소용돌이파 작가들은 열등한 집단으로 과소평가되었다. 소용돌이파로서 생존하는 또 한 사람의 작가인 윌리엄 로버츠는 이에 대해 팸플릿을 통해서 정당하고 비판적인 항의를 했다.
윈덤 루이스는 1914년을 전후하여 영국에서 활약하던 추상 작가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루이스가 편집한 잡지 '블래스트'의 발행은 당시 영국 미술계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잡지는 2호까지밖에 나오지 않았다. 창간호는 1914년 여름에 나왔는데, 루이스 자신이 '엄청난 크기의 짙은 다갈색 잡지'라고 묘사했다. 이 잡지는 그로부터 50년 후 로버츠가 희극적으로 재구성해서 그린 '에펠탑의 카페에 있는 소용돌이파 작가들'이란 그림에서 마치 어린애들이 동화책을 움켜쥐고 있듯이 이 운동의 주요 멤버들 손에 들려 있었다. 2호이자 종간호는 흑백 표지에 더 얇아진 두께로 1915년에 나왔다.
루이스, 로버츠, 에드워드, 웨즈워스, 프레데릭 에첼스 등 '블래스트'에 실렸던 작가들의 작품은 대개 오늘날 행방불명되었기 때문에 이 잡지는 이들 작품의 유일한 기록이 된다. '블래스트'는 해면처럼 기공이 있는 거친 종이에 검정 잉크만을 써서 거친 활자로 인쇄되었다. 1926년에 '책의 장래'란 글에서 러시아 화가며 디자이너인 엘 리시츠키는 '블래스트'를 가리켜 1920년대와 1930년대의 그래픽 디자인을 혁신하신 활판 인쇄술의 선구자 중 하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활자체와 1917년 '언더그라운드 썼던 에드워드 존스턴의 문자 도안은 현대 디자인의 흐름에 영국이 이바지한 마지막 중요한 공헌이며, 데 슈틸과 바우하우스, 로드첸코나 리시츠키 자신과 같은 러시아 디자이너들에 의한 활판 인쇄술의 혁신을 예고한 것이었다.
영국의 초기 추상 화가들의 작품 대부분은, 특히 웨즈워스와 루이스의 작품은, 마치 이 무렵에 개발된 항공 사진 기술에서 영감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이 점에서 그들의 작품은 말레비치의 작품, 즉 1915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오늘날 추정되는 그의 절대 지상주의 회화 및 소묘 작품보다 앞서 있다. 말레비치가 이들의 작품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리시츠키가 '블래스트'를 볼 수 있었다면 말레비치도 그것을 보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다해도 그 시기는 이보다 더 후일 것이다. 소용돌이파 절대주의자들 작품의 유사성은 아마도 그들이 모두 입체파와 미래파, 사진 및 최근의 공학 기술과 건축상의 발전 등에서 영향을 받았던 사실에 기인할 것이다.
당시 루이스의 가까운 동료였으며, 이 운동에 이름을 붙여준 장본인님이기도 한 에즈라 파운드는 당시 어떤 글에서 소용돌이파가 어떻게 미래파와 구별되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미래파는 인상파에서 내려온 것이다. 미래파는 그것이 미술 운동인 한 일종의 가속화된 인상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확장 또는 표면의 미술이며 이 점에서 집중적인 성격의 소용돌이파와 반대된다."
미래파는 근본적으로, 아주 얕은 평면을 가로질러 동시에 보이는, 연속적 이미지들의 가속화다. 이 점은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에서 보이는 '입체 미래주의'적 표현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용돌이파가 시도한 것은 가속화를 깊이의 방향으로 확대함으로써 강렬하고 돌입하는 듯한 원근감, 즉 소용돌이를 창조하는 것이다. 파운드는 이렇게 썼다. "그 영상은 이념이 아니다. 그것은 빛을 발산하는 마디나 꽃송이다. 그것은 내가 '소용돌이'라고 부르는, 또 필연적으로 그렇게밖에 부를 수 없는 어떤 것이며, 바로 그곳에서 그곳을 통하여 그리고 그 속으로 항상 개념들이 끊임없이 달려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소용돌이'로밖에 달리, 부를 수 있는 더 버젓한 말이 없다. 이러한 필연성 때문에 '소용돌이파'란 명칭이 생겨났다."
'블래스트'는 이목을 끌기 위해서 창간호 발행을 축하하는 '블래스트 저녁 식사'를 마련했다. 이 회식 장면은 테이트 미술관에 있는 로버츠의 그림에서 환기되었다. 아울러 스트린드베리 부인이 경영하는 '금송아지 동굴'에서도 '블래스트 파티'가 열렸는데, 에드가 젭슨의 기록에 따르면 이 파티에서 "터키트롯 춤과 바니하그 춤판이 벌어졌다"라고 한다. 이같이 떠들썩한 연희가 열리고 또한 '블래스트'에 여러 개인 및 제도를 저주하거나 칭찬한 '강풍에 쓸려갈 것들'과 '축복받을 것들'을 열거한 목록이 실렸다. 이것들은 분명히 최대한의 선전효과를 노리기 위해 계획된 것이지만 이러한 호언장담과 자기선전, 폭파와 포격의 깊은 심층에는 존속할 수 있는 현대 양식을 영국에서 이룩해보려는 진지한 기도가 있었다. 이러한 기도는 전쟁만 아니었다면 아마도 더 지속되었을 것이다.
폴 오버리
Paul O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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