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행위는 표현적이며, 동작은 의도적으로 표현된 행위다. 모든 예술은 작가와 그가 작업하던 상황의 표현이다. 그러나 일부 예술은 강한 감정과 감정으로 충만한 메시지를 전하거나 감정을 발산하는 시각적 동작을 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주도록 의도되었다. 그러한 예술이 곧 표현주의 예술이다. 20세기 미술 대부분은, 특히 중부 유럽의 미술은 이와 같은 종류였으며, '표현주의'라는 라벨이 붙어왔다. (문학, 건축, 음악 등도 마찬가지로 이와 비교될 만한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표현주의라고 불리는 운동은 절대 없었다.
게다가 표현력의 강화가 특별히 20세기 미술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위기의 시대란 그 시대의 불안을 예술 작품에 반영하는 예술가들을 선출하는 것 같다. 일단 예술가의 개성이 예술 작품의 특징을 결정짓는 요소를 인정되면 문예 부흥기에도 꾸준히 그랬던 것처럼 예술은 더욱더 공공연히 자기 계시의 수단으로 기능을 발휘한다. 현대 개인주의의 상황에서 자기 계시란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지만 현대의 표현주의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하고 진정한 혁신은 적어도 추상적 구성이 주제화만큼이나 효과적인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이다. 표현적인 수단을 위한 (의미라는 알약의 표면을 적당히 사탕발림하는 정도의) 도구 구실을 하던 주제가 폐기될 수도 있음을 알아냈고, 색채와 형태, 붓 자국과 질감, 크기와 규모의 표현력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최근의 발전은 19세기 초엽 이래로, 직접 감동을 주는 음악의 특성을 미술가들이 깨달아 그에 의해 고무된 것이다. 그리하여 서술이나 묘사의 도움도 없고, 심지어는 연상적인 반영에 호소하지 않아도 전달을 가능케 하는 창조적인 한 형태가 나타났다. '음악과 같이 미술도' 누려왔던 자유에 대한 인식을 증대시키는 데 이바지했고 이는 민족주의에 따라 더 많이 추진되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영웅적인 선구자로 볼 수도 있었는데 이들은 학술적 전통에 교체 안을 제시했다.
종교개혁 전야의 뒤러, 알트도르퍼, 보슈 등이 추구한 미술은 표현주의적 자질과 특별히 20세기에 강한 호소력을 지닌 묵시적 불안감을 특징으로 한다. 당대 화가인 그뤼네발트는 1515년경에 이젠하임 제단화를 그렸는데 현재까지도 찬탄을 불러일으키고 아예 복사품이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1918년에 뮌헨에서 출판된 <중세 독일의 표현주의적 세밀화>는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독일 계몽사를 보여주는데, 현대의 표현주의자들과 대중에게는 하나의 모범이 된 책이었다. 당시 대중은 민속 예술과 비유럽적인 예술, 여러 종류의 원시적 예술에 대한 문헌이 점차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고전적인 이상주의를 대신하는 역할로서 독자들과 친근해졌다.
그러나 심지어는 전통적으로 고전주의가 핵심을 이루는 서구 미술도 표현주의를 뒷받침할 만한 요소는 있었다. 고전주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워낙 성행했으므로 다른 나라들은 자기네 천재들이 생소한 기법을 쓴다는 이유로 빛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극적인 명암, 풍부한 색채와 개성적이고 열정적인 터치를 보여주는 베네치아파의 전통에는 다소 표현주의적인 전통이 있었다. 베네치아파는 엘 그레코와 렘브란트 같은 화가들을 배출했다. 심지어 고전적 이론이 정립되고 그것을 전파하기 위해 미술원이 설립된 중부 이탈리아에서도 미켈란젤로 같은 화가는 자신의 개인적 충동에 휘말려 격렬하고 일그러진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후에도 여러 화가가 연이어 그를 모방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포화 상태 같은 회화 기법과 구성적이고 조형적으로 일그러진 형태는 현대 표현주의를 보여주는 두 가지 중요한 예다.
바로크 예술은 관중의 반응에 신경을 썼다. 예술은 교회와 왕권에 봉사하는 데 필요한 신앙과 충성심을 다지기 위한 것이었으며, 표현주의적 방식이 이러한 비개인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곤 했다. 바로크 예술은 이런 목적을 위해 사용된 종합 예술품, 즉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많은 작가가 합동하여 만든 혼합 작품의 특별한 효력을 지나치게 써먹었는데, 그중에는 때때로 후세에 전달할 수 있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개별적으로 위대한 예술가들이 있었다. 루벤스 예술은 공공연하게 감정적인 특징이 있었는데, 고전주의의 엄격한 규율에 따르기를 꺼리는 후계자들에게는 이상적인 본보기였다. 그가 죽은 지 오래지 않아 루벤스는 부지불식간에 근대주의와 자기 신뢰의 투사로서 받아들여졌다. 그동안에 네덜란드 화파는 학문적인 명성의 혜택 없이, 새로운 두 부류의 회화 형태를 발전시켰다. 풍경이나 정물처럼 내용이 적은 주제에 대한 관심사는 19세기에 주제보다는 표현 방법을 탐색하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렘브란트의 색채 사용과 명암 배합과 필치 사용, 그리고 회화와 에칭화에서 사용한 선과 대조법은, 심지어는 주제조차도 전례 없이 독자적이었다. 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1800년경부터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의 본질을 깨닫고 대대적으로 사회적 모순에 맞서서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에 사회에서 버림받은 천재, 즉 최초의 현대판 국외 추방자가 되었다.
18세기 계몽주의는 질서의 가치를 개인주의보다 우선순위에 두었지만, 이것은 낭만주의가 도래하면서 뒤바뀌었다. 고야, 블레이크, 들라크루아, 프리드리히는 모든 예술 분야를 휩쓴 자기분석의 기치를 내세운 놀랄 만한 공헌자들이었으며, 사회에 대해 마찬가지로 의문을 품었다. 터너의 경우, 내성적인 화풍은 자연의 에너지에 대한 강렬한 애착과 화폭 위의 색채 에너지가 결합하여 이루어졌다. 무의식적인 인간과 초인적인 힘에 근원을 둔 현대 예술은 창조 개념 및 본질이 제기되고 토의되었다. 즉 자유분방한 개인주의가 우주적 진리를 만들 수 있다는 모순된 신념이 탄생하여 고전주의 자체가 변형되었다. 특히 다비드에 의해서 목적에 합치된 형태로 재정립된 고전주의는 앵그르와 그 외의 화가들에 의해 특이하고도 점차 추상적인 것으로 변했다. 원시주의가 최초의 주요한 형태적인 공헌을 하게 한 것은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가 아니라 앵그르의 고전주의였다.
노버트 린턴
Norbert Lyn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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